역사적 배경
왜 신전자초방을 썼는가?
- 우리나라 초기 : 염초 굽는 법을 잘 몰라서, 중국에 의존
- 자국화를 시도했으나, 재료가 많이 드는 데에 비해 화력이 약했음.
- 판서 민공이 김지남에게 염초 제작법을 알아오라 지시.
- 중국에서 김지남이 여러 차례 위험을 넘기며 최종적으로 알아냄.
의의 : 염초 제작을 독자화하여 품질 높은 염초의 국내 생산을 가능하게 함.
한계 : 근본적으로 중국 염초 제작 방법을 들여온 것과 다를 바가 없음. 일시적인 중국 의존도는 줄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았을 것.
화학적 해석
화약의 기본 구성 요소
질산칼륨, 숯, 황(각각 산화제, 환원제,환원제(발화점 낮춤.)) 역할을 수행함.
기존에 비료, 분변이 섞인 흙 등을 사용했던 이유는 질소가 풍부하기 때문.
신전자초방의 첫 번째 단계 - 취토
검은 빛을 내거나, 맵거나 짠 흙을 모은다 - 이것들은 사체 등이 분해되면서 풍부한 질산염을 가지고 있음. 그러나, 대체로 질산 칼슘 형태, 흡습성이 높아 화약에 그대로 사용하기 어려움.
두 번째 단계 - 취화
재 속 K2CO3(우리가 양잿물 마시면 안되는 이유.)와 반응시키기 위해, 식물을 태워 재를 얻어냄.
세 번째 단계 - 교합
재와 흙을 일 대 일로 섞음. (반응식 자체의 당량이 일 대 일이긴 하나, 흙의 성분 비까지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반응비는 근본적 이유가 될 수 없음.)
이는
의 반응을 거치기 때문에, 앙금이 된 탄산 칼슘을 걸러낼 수 있음.
네 번째 단계 - 사수
위 이유로, 물을 부어 분별해냄.
다섯 번째 단계 - 오수

질산 칼륨의 온도에 따른 용해도 차가 큼을 이용해서, 분별 증류법을 시행 후 불순물을 걸러냄. 이 때 얻어낸 것을 모초라고 함.
여섯 번째 단계 - 재련
다시 가마솥에 넣고 물을 부어 끓임. 공정을 다시 거치고 아교물을 넣어 거품을 걷어냄. 이후 찬물로 식힌 후 기다리면 정초(질산칼륨)을 얻을 수 있음
필요에 따라 7단계 - 삼련을 거치기도 함.
8,9 - 잿물 및 떌감 / 아교물 만들기
10
버드나무 재, 정초, 유황과 섞음. (각각 3량, 1근, 1량 4돈(여름엔 1량 5돈))
쌀뜨물과 섞음(폭발을 예방하기 위한 수분 보충 및 연결제)
왜 버드나무를 쓰나? 다공성, 가벼움, 낮은 회분 함량 → 불순물 적게 남음, 탄소 많음.
현대 화약의 기준 비율 (숯 : 질산칼륨 : 유황 = 15 : 75 : 10 )
단위 환산 후 전통 비율 비교 (15 : 180 : 7 78.4 : 14.7 : 6.9)
로 현대 상황과 비슷함을 알 수 있음.
조선시대 단위 표
1근 = 16량
1량 = 10돈
느낀 점.
이러한 화학적 배경을 살펴보고 나니까, 이 내용 자체에서도 상당히 생각해볼만한 것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럼에도 조선의 자연과학 발전이 더뎠던 이유를 유추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과거 시대에서 화학과 같은 자연 과학은 배부른 학문, 소위 말해 고위층이 영위하는 학문이다. 그 이유는 선천적인 지능, 배경 지식 차이가 아닌 삶에 대한 여유가 가져다주는 시선 때문이다. 동일한 신체조건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재정 및 삶에 여유가 있어야 이러한 궁금증을 이어가고, 해결하며 또 다른 질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조선에서의 신전자초방의 모습을 보면, 판서 민씨의 명을 받아 중인인 역관 김지남이 연구된 내용을 기록하였으며, 내용을 통해 미루어보아 화약을 만드는 일은 양민, 천민 같은 상대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낮은 계층이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계급에 있는 인물이 능동적으로 자연과학에 대한 질문을 형성하고, 해결하여 사회에 영향력을 제공하는 것은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자연스레 주류 학문에서 더더욱 멀어지며 연구되지 않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고 그러므로 기술 발전이 타국에 비해 늦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Gunpowder
본 자료는 신전자초방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전문을 Gemini를 이용해 현대 한글로 해석 후 해당 자료를 이용했음을 알림.
원 글은 아래와 같음.
1. 취토 (取土) - 흙 채취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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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나 담장 밑, 낡은 집터 앞에서 볕을 쬐어 습기가 없고 밤에 짠 기운이 이슬처럼 맺히는 흙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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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이 검고 짠맛이 나는 것이 가장 좋으며, 서늘하거나 쓰거나 달거나 신맛이 나는 것은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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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짠맛이 나더라도 축축한 생흙은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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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보고 맛을 보아, 흰 흙은 맛이 싱겁고 검은 흙은 맛이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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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칼로 그 검은 무늬 부분만 얇게 긁어모으되 절대 깊게 파지 말아야 하며, 깊이 파면 생흙이 섞여 맛이 옅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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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어낸 후 사람들이 그곳을 밟고 며칠간 햇볕을 쬐면 기운과 짠맛이 다시 솟아올라 검은빛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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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전대로 긁어 쓰면 무궁무진하게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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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비를 맞게 되면 십여 일이 지나 햇볕에 마르기를 기다린 후에야 다시 긁어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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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맛이 가장 중요한데, 집 안의 흙을 함부로 긁으면 그 짠맛을 잃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2. 취회 (取灰) - 재 채취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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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북쑥이나 곡식 줄기(볏짚 등), 잡초, 잡목을 태운 재가 가장 좋으며 소나무 재는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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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달일 때 반드시 잿물로 쓸 수 있는 땔감을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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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면 한 가지 재료로 불도 때고 재도 얻어 두 가지 이득을 볼 수 있다.
3. 교합 (交合) - 흙과 재 섞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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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네 말(4두)과 재 네 말(4두)을 골고루 잘 섞고 모래와 돌덩이를 걸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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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만일 누렇고 찰지면 재 반 말을 더 넣고, 모래가 섞였으면 재 반 말을 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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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흙을 반씩 섞어 서로 조화롭게 한 뒤에야 훗날 얻는 양이 많아지고 그 화약의 품질이 맹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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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시험하여 이미 효험이 입증되었으니 함부로 비율을 더하거나 빼서는 안 된다.
4. 사수 (篩水) - 물 거르기(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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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독 하나를 바닥에 구멍을 뚫고 물이 흐를 홈통을 박아 물길을 낸 뒤, 그 아래에 질그릇(도기)을 놓아 물을 받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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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안에 우물 정(井) 자 모양의 나무를 받치고, 그 위에 칡이나 대나무로 만든 발 두 겹을 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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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무린 흙을 그 위에 반쯤 넣고 독 가장자리를 둘러가며 가볍게 다지되 한가운데는 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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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반을 마저 채우고 앞서와 같이 다진 후 맑은 물을 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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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흙을 다 스며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물을 붓는데, 이렇게 거른 물이 두 가마솥에 가득 찰 때까지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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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거른 첫 가마솥의 물을 ‘정수(正水)‘라 하고, 두 번째 가마솥의 물을 ‘말수(末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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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로 흙을 거를 때 이 말수를 부어 거르면 염초의 맛이 더욱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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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른 물을 달일 때 절대 탁한 물을 써서는 안 되며, 탁한 물을 쓰면 가짜 염초가 생기고 폭발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5. 오수 (熬水) - 물 달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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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正水) 한 가마를 솥에 넣고 다북쑥이나 잡목 등의 땔감으로 센 불에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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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끓어오르면 서서히 약한 불로 줄여 반 가마 분량이 될 때까지 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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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 물을 다른 그릇에 옮겨 담아 불순물이 다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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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의 가마솥을 깨끗이 씻은 후, 맑게 가라앉은 윗물만 다시 솥에 붓고 한두 번 더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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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발을 떠서 찬물에 대어 완전히 식힌 다음, 물을 따라내어 염초 결정이 맺히는지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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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잘 맺히지 않으면 한 번 더 끓여 앞선 방식대로 다시 확인하고, 결정이 잘 맺힌 것을 확인한 후 불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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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열기가 식으면 질그릇(기와 분)에 나누어 담아 조용한 곳에 하룻밤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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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남은 물을 따라내면 고슴도치 털과 같은 모양의 염초가 맺혀 있는데 이를 ‘모초(毛硝)‘라 한다.
6. 재련 (再煉) - 다시 달여 정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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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모초를 가마솥에 평평하게 깔고 맑은 물을 붓되, 물의 높이가 염초 위로 손가락 두 마디(2지) 정도 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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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끓여 염초가 다 녹으면 준비해 둔 ‘아교물’을 조금 넣고 다시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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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고 더러운 불순물들이 위로 떠올라 거품이 되는데, 말총으로 만든 국자로 이 거품을 남김없이 걷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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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교물을 넣고 끓이며 거품을 걷어내는 과정을 서너 번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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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로 한 술 떠서 기울여 보았을 때, 나비의 날개나 상아 끝부분처럼 엉기어 맺히면 다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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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그릇에 옮겨 담고 찬물을 한두 모금 뿜어준 뒤, 두꺼운 솜이불로 그릇 입구를 밀봉하여 단단히 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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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햇빛이 들지 않는 서늘한 방에 두어 완전히 식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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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개를 풀고 남은 물을 따라내면 이슬이나 옥처럼 맑고 영롱하게 빛나는 염초가 나오는데 이를 ‘정초(精硝)‘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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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과 아교를 사용하여 불순물을 확실히 잡았기 때문에, 이 정초는 10년이 지나도 습기를 먹지 않는다.
7. 삼련 (三煉) - 세 번 달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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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련을 마친 후 품질이 충분히 좋지 못하면 삼련(세 번 달이기)을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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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재련이 완벽하게 되었다면 굳이 삼련을 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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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달일 때나 재련·삼련 시에 따라내고 남은 물은 버리지 말고 다음 번 처음 달일 때 3분의 1씩 섞어 끓이면, 버려지는 양이 적어지고 수율이 올라간다.
8. 예초 (刈草) - 풀 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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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보름 이후부터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온갖 풀이 시들었을 무렵의 재가 가장 맵고 좋으며, 농한기라 인력을 동원해 채취하기도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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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기 어려운 곡식대 대신 다북쑥이나 부드러운 나뭇가지, 억센 잡초 등을 마음대로 베어 땔감 겸 잿물용으로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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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조절이 까다로운 소나무 대신 잡풀을 쓰는 것은 공정을 훨씬 수월하게 만든다.
9. 교수 (膠水) - 아교물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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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교 서 돈(3전)과 맑은 물 한 되(1승)를 함께 달여 완전히 녹인 것을 재련할 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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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교는 탁한 것을 거르고 맑은 것을 끌어올리는 성질이 있어, 끓일 때 넣으면 더러운 불순물이 거품이 되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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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교물을 너무 많이 넣으면 찌꺼기는 다 없어지지만 정작 염초의 기운도 쇠약해지므로 적당량만 넣어야 한다.
10. 합제 (合製) - 화약 배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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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정초(精硝) 한 근, 버드나무 재 3량, 유황 1량 4돈을 섞는다. (6~7월에는 유황 1돈을 더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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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을 곱게 가루 내어 체로 친 다음, 쌀뜨물 중 맑은 것을 조금씩 부어 골고루 잘 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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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쇠에 넣고 찧는데, 새벽에 시작해 저녁까지 오래 찧을수록 화약의 성능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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찧을 때 화약에 촉촉한 기운이 있어야 하니, 너무 마르면 물을 조금씩 뿌려가며 뒤집어주어 건조해지지 않게 해야 한다.
11. 득초법시말 (得哨法始末) - 염초 제조법을 얻게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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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초기에 염초 굽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해 늘 중국에 의존해야 했고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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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여러 사람들이 중국인이나 왜인에게서 부분적인 기술을 배워왔으나 효율이 낮고 품질이 조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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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임신년(1692년), 역관 김지남이 사신을 수행하여 청나라에 갔을 때 요양 지역에서 사재를 털어 마침내 완벽한 비법을 알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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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만 등의 대신들이 이 새로운 비법을 군기시와 무기고에 적용하여 시험한 결과, 수고와 비용이 크게 줄고 화약의 품질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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땔감으로 값비싼 소나무 대신 길가의 잡초를 쓰고, 백성의 집안 흙 대신 밭이나 길가의 흙을 쓰게 되어 백성들에게 끼치는 폐단까지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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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훌륭한 제조법을 숙종 무인년(1698년)에 김지남이 기록하였고, 이후 영조 병진년(1736년) 우의정 윤동도의 건의를 통해 이 『신전초방』이 전국 군영과 고을에 널리 배포되어 조선 화약 제법의 영구적인 표준이 되었다.